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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와인

[와인,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아는 만큼 보이는 와인의 세계 ① 와인 시음의 생리학

by 포테이토준 2023.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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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시음의 생리학

와인이 일으키는 가장 놀라운 일 중 하나는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는 능력이다. 와인을 음미하는 데는 우리의 모든 감각이 관여하지만, 특히 후각을 통해 가장 강하고 유쾌한 경험을 만끽할 수 있다. 미각과 더불어 후각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와인을 음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기적으로 과학적 이해의 진보로 증명되고 있는 하나의 사실을 체험하고 있다. 즉, 냄새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학습과 사랑에서부터 노화와 건강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몸소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후각은 어떻게 작용할까? 어째서 냄새가 감정을 환기시키고 기쁨을 느끼는 데 그토록 중요할까?

냄새는 어떻게 맡을까

코는 숨을 들이쉴 때마다 주변 세계의 중요한 정보, 즉 그곳의 분위기, 위험 따위를 감지한다. 눈을 감고 입을 다물며 손을 가만히 놔두고 귀를 막을 수는 있지만, 코만은 그럴 수 없다. 코는 쉬지 않고 활동하면서 위험 요소나 쾌감의 기회를 탐지한다.

우리의 후각은 학습을 돋고 기억을 환기시키며 치료를 촉진하고 열망을 굳히고 행동을 촉구한다. 또, 생명의 보존과 유지에 아주 중요해서 후각이 수집한 순간적 정보는 다른 감각들을 처리하는 시상을 거치지 않고 바로 대뇌변연계(정서적 행동과 동기유발을 조절하는 신경회로 전부를 일컫는다)로 이동한다. 대뇌변연계는 우리의 감정적 반응, 정서, 동기, 고통 및 즐거움의 기분을 조절하고, 후각적 자극을 분석하는 곳이다.

대뇌변연계에 저장된 기억은 유일하게 감정 상태와 육체적 감각을 연결하며, 가장 중요하면서 가장 원시적인 학습 형태, 즉 작업기억 working memory(현재 작업 중인 정보를 일시적으로 저장했다가 활성화시켜 결론을 산출하는 기능)을 유발한다. 우리가 냄새를 기억하는 방식은 장면, 소리, 맛, 감촉을 기억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냄새에 대한 반응 방식은 오히려 감정에 대한 반응 방식과 비슷하여 심박동이 증가하고 더 민감해지며 호흡이 가빠진다. 이러한 감정과의 연관성 덕분에 후각은 기억을 강하게 자극하는 힘이 있어서 한 번 냄새 맡는 것으로도 즉시 특정 시간과 장소로 되돌아갈 수 있다.

2004년, 컬럼비아대학의 리처드 액설 교수와 허친슨 암연구센터의 린다 벅 교수는 후각에 대한 획기적인 발견으로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다. 액설과 벅 교수는 코 상부의 상피 세포에서 거대한 유전자군, 즉 후각수용체 olfactory receptor라는 독특한 단백질 수용체의 생성을 제어하는 유전자군을 발견했다. 후각수용체는 들어오는 수천 가지 특정 냄새 분자를 인지하여 그 분자에 들러붙는다. 후각수용체에 붙들린 화학분자는 전기신호로 변환되고, 이 전기신호는 각 비강에 하나씩 있는 후각망울의 뉴런(신경단위)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분석과 반응을 위해서 후각신경을 통해 대뇌변연계에 있는 후각피질 primary olfactory cortex로 이동한다. 냄새의 전기신호가 대뇌변연계로 향할 무렵, 냄새의 구성성분들이 이미 파악된 후 전기신호로 전환되어 있다. 대뇌변연계는 이렇게 파악된 구성성분들을 다시 종합한 뒤 기억의 거대한 데이터뱅크에서 그에 걸맞는 것을 탐색함으로써 분석을 한다. 분석이 완료되면 대뇌변연계는 위태함이나 즐거움, 싸움이나 도피 같은 적절한 생리적 반응을 유발한다.

전문적인 시음가들이라면 포도원, 제조자, 생산연도까지 상기할 수 있다. 시음과 테스트를 많이 해보고 공부를 많이 할수록 그만큼 더 잘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후각 및 미각 치료연구재단 Smell & Taste Treatment and Research Foundation의 앨런 허슈 박사와 모넬화학감각연구소 Monell Chemical Senses Center의 전문가들은 인간의 생애 주기에 따른 후각의 변화를 설명함으로써 후각의 진보와 퇴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새로운 해명을 제시했다.

유아기: 아이들은 자라면서 여러 가지 다른 냄새를 인식하고 기억하는 능력도 발달한다. 특히 정서적인 사건과 연관된 냄새들을 잘 인식하고 기억한다. 아이들은 이 시기에 대체로 냄새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힘들어하지만 평생에 걸쳐 이어질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감각적 정서적 느낌을 구축해나간다.

사춘기: 남성과 여성 모두 후각이 가장 예민해지는 시기인데, 여성은 생리를 시작할 무렵부터 훨씬 더 예민해진다. 이렇게 고도로 예민해진 후각은 가임기간 동안 계속 이어진다.

성인기: 성인기에 들어서도 냄새를 구분하는 능력은 여성이 남성보다 월등하다. 그래서 여성들은 즐겁고 강렬한 냄새에는 더 후한 평가를 하고 불쾌한 냄새에 대해서는 낮은 평가를 한다. 여성의 후각은 배란기나 임신 중에 더 예민해진다.

중년기: 남성과 여성 모두 35~40세에 서서히 후각의 예리함을 잃어간다. 하지만 냄새를 판별하고 기억하는 능력은 평생에 걸쳐 계속 향상될 수 있다.

65세: 65세에 접어들면 2명 중 1명꼴로 후각 능력이 평균 33% 하락한다. 더 나이가 들어 65세가 넘으면 4명중 1명이 후각 능력을 상실한다.

80세: 80세쯤 되면 대다수가 후각 능력의 50%를 상실한다.

와인의 냄새가 병에서 뇌까지 이르는 과정

와인의 냄새가 병에서 뇌까지 이르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 기대감에 부풀어 병을 딴다.
  • 적당한 잔에 와인을 따른다.
  • 잔을 흔들어 와인의 아로마를 발산시킨다.
  • 수차례 와인의 부케를 깊이 들이마신다.
  • 와인 속의 화학성분(에스테르, 에테르, 알데하이드 등)이 공기를 타고 콧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 코의 중간쯤에서 특정 단백질 수용체를 지닌 수백만 개의 후각수용체 뉴런(후각상피)이 그 와인 특유의 성분을 이루는 냄새에 붙는다.
  • 적절한 수용체와 짝을 이룬 특정 냄새 분자들의 상호작용으로 수용체 모양이 변한다.
  • 수용체가 변하면서 유발된 전기신호가 후각망울로 갔다가 뇌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뇌에서는 이 전기신호를 어떤 냄새나 냄새들의 집합으로 파악한다.
  • 뇌에서는 그 냄새들을 지각, 느낌, 감정, 기억, 지식 등에 연계시킨다.

맛은 어떻게 느끼는가

맛 역시 냄새와 마찬가지로 화학적 감지 시스템에 속한다. 맛은 미뢰라는 특정 체계에 의해 감지되는데, 인간에게는 보통 5000~10만 개의 미뢰가 있다. 미뢰는 대부분 혀에 분포되어 있으나 목 안쪽이나 입천장에도 약간씩 있다. 미뢰는 감각세포로는 유일하게 평생 동안 주기적으로 재생성되어 약 10일마다 전면적으로 재생된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연구 중인데, 그 원리를 이용해 손상된 감각세포 및 신경세포를 재생시키기 위한 것이다.

각각의 미뢰에는 미각세포들이 밀집돼 있고, 이 미각세포에는 미각수용체를 지닌 작은 미모들이 있다. 미각수용체는 후각수용체처럼 특정 유형의 용해 화학물에 민감하다. 우리가 먹는 모든 것들은 (주로 침을 통해) 용해되어야만 미각수용체가 그 맛을 구별해낼 수 있다. 미각수용체는 용해된 화학물을 읽고 음식의 화학적 구조를 해석한 뒤 그 정보를 전기신호로 변환한다. 이 전기신호가 안면신경 및 혀인두신경을 통해 코를 거쳐 뇌로 보내지면, 뇌가 그것을 해독하여 특정한 맛으로 파악한다.

인간의 타액

타액은 음식의 소화나 구강위생뿐만 아니라 맛을 보는 데도 중요한 요소다. 타액이 미각 자극물을 용해하여 그 화학물을 미각수용체 세포로 보내주기 때문이다.

음식을 천천히 씹으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음식을 천천히 씹거나 음료를 천천히 음미하며 먹으면 좀더 많은 화학 성분들이 용해되어 많은 아로마가 발산된다. 이렇게 되면 미각수용체나 후각수용체가 분석할 것들을 더 많이 제공함으로써 뇌에 좀더 복잡한 정보를 보내게 되고, 그로써 한층 높은 차원의 지각을 경험하게 된다. 더 강한 맛과 냄새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미뢰의 대다수가 입 안에 분포되어 있으나, 인간에게는 질감과 온도를 지각하고 여러 요소를 평가함으로써 느낌 등을 인식하는 신경종말이 그 외에도 수천 개가 더 있으며 특히 입, 목, 코, 눈의 축축한 상피 부분에 몰려 있다. 인간은 대략 10만여 종의 냄새 및 복합적 냄새를 감지할 수 있으나, 맛은 4, 5개의 기본적인 맛, 즉 단맛, 짠맛, 신맛, 쓴맛, 우마미(감칠맛)밖에 감지하지 못한다. 이 중에서도 와인에서 느낄 수 있는 맛은 단맛과 신맛 정도이며 쓴맛은 이따금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입 안의 감촉 Mouthfeel

입 안의 감촉이란 혀, 입술, 뺨을 기분 좋게 하거나 톡 쏘거나 통증을 주는 등의 감각을 말한다. 또한 삼키거나 뱉어낸 후에 입 안에 남아 있는 감각도 해당된다. 예를 들다면, 샴페인의 기포가 주는 톡 쏘는 짜릿함에서부터 타닌이 주는 이를 조이는 듯한 떫음까지, 멘톨이나 유칼립투스같이 시원하고 싸한 느낌에서부터 알코올 도수가 높은 레드 와인의 후끈거림까지, 저알코올 화이트 와인의 물리도록 단 맛에서부터 풍부한 론 밸리 와인의 벨벳으로 감싸는 듯한 느낌까지 다양하다. 와인의 물리적 느낌은 입 안의 감촉에도 중요한데, 틴 thin 바디에서부터 풀 바디까지, 가벼운 것에서 묵직한 것까지의 무게감, 질감, 떫음, 기름짐, 매끄러움, 씹힘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모두는 와인의 전반적인 밸런스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느낌만이 아니라 육체적 반응(건조함, 오므라듦, 타액 분비)을 유발하여 말 그대로 와인이 혀 위에서 춤을 추거나 이에 척 들러붙는 듯한 감촉이 일어나기도 한다.

냄새와 맛을 동시에

최근의 연구 결과, 미각은 혼자 작동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와인 시음가들은 수 세기 전부터 알았던 사실이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추가되었으며, 후각만이 유일한 이중체제라는 점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증거도 나왔다. 인간은 종종 코와 입으로 동시에 공기를 들이마시며 냄새를 맡으면서 냄새의 복합성을 더한다.

냄새는 다음의 두 가지 경로를 통해 후각수용체에 도달한다.

정비측 자극 ORTHONASAL STIMULATION: 향화합물(냄새)이 '외비공(콧구멍)'을 통해 후각망울에 이른다.

후비측 자극 RETRONASAL STIMULATION: 향화합물이 입 안(목 안쪽의 기도)에 있는 '내비공'을 통해 후각망울에 이른다. 그래서 코를 틀어막아도 강한 치즈 냄새가 입을 타고 들어올 수 있다. 후각수용체를 자극하는 분자들이 입 안에서 떠다니다가 내비공으로 올라가 후각망울에 있는 후각 뉴런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과학잡지 <뉴런 Neuron>에 초콜릿 냄새가 코를 통해(정비측을 거쳐) 후각계에 이를 때와 입을 통해(후비측을 거쳐) 후각계에 이를 때, 서로 다른 뇌의 영역을 자극한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코를 통해 냄새를 감지하면 음식의 섭취 가능성을 판단하는데 유리하고, 입을 통해 감지하면 음식의 조리법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풍미란 한마디로 음식과 음료를 통한 냄새, 맛, 느낌을 결합하여 지각해내는 것인데, 그중 냄새의 역할이 가장 압도적이다. 와인 시음이 '와인의 냄새 맡기'나 다름 없다는 거나, 몇몇 화학자들이 와인을 '향기가 깊은 무미의 음료'라고 묘사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맛과 냄새의 공용어를 찾아서

'냄새'는 인간의 가장 원시적이고도 가장 강한 감각인 후각에게는 다소 부족한 단어다. 우리가 주위에서 지각하는 냄새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나는 냄새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 역사에 걸쳐, 와인 시음가들은 공통의 언어를 만들어냄으로써 활기 있고 뚜렷한 감각들이 기억, 기대, 연상, 개인적 취향을 만나는 교차점을 음미하도록 많은 기여를 해왔다.

색깔처럼 아로마도 근본적으로 여러 부분으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한 부분들이 서로 합쳐져서 와인이라는 웅장한 교향곡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의 와인 아로마 휠 Wine Aroma Wheel(앤 노블이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서 행해진 '와인 지각 연구결과'를 통해 개발한 기준표이다. 이 아로마 휠에는 와인에서 나는 복합적인 아로마를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주요 용어가 담겨 있다)의 분류를 예로 들자면, 기본적인 과일 아로마로는 '시트러스류', '딸기류', '나무열매류', '열대과일류', 건과일류' 들로 분류하고 있다. 같은 방식으로 식물 아로마로는 '신선 식물류', '통조림 식물류', '건식물류' 들로 분류한다. 그 밖의 아로마 분류로는 견과, 캐러멜, 나무, 흙, 화학물, 자극성 냄새, 꽃향기, 알싸한 냄새 등이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똑같은 식으로 냄새와 맛을 지각하는 경우는 없다. 냄새를 맡고 맛을 느끼는 일은 개인 차가 크며 경험에 따라 저마다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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